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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주의의 함정
글 : 클라우스 베를레 / 옮긴이 : 박규호
출판사명 : 소담
도서분류 : 소담출판사 > 인문/사회
발행일/ISBN/판형/분량: 2012-03-15 / 89-7381-266-0-03300 / 145*210 / 3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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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쿨하게 완벽주의와 이별해야 할 때!
완벽주의자인 당신이 귀 기울여야 할 폭로 혹은 진실
 
 
완벽을 꿈꾸는 사람들, 완벽주의자 
대한민국의 서울에서 철수가 태어난다. 엄마 배 속에서부터 두뇌 계발을 위해 모차르트를 들은 철수는 세 살이 되자 몸에 좋은 유기농 급식을 제공하며 영어만 사용하는 유치원에 다닌다. 유명한 사립 초등학교와 사립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거쳐가는 학원의 수와 학원비는 상상을 초월한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뒤처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수한 성적으로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철수는 당연히 서울에 있는 유명 사립대학에 입학한다. 각종 자격증, 외국어 성적, 인턴십, 교환학생과 해외 봉사 등을 통해 완벽한 스펙을 쌓은 그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대기업에 입사한다. 사회적 지위도 높고 연봉도 높은 완벽한 회사다. 근무시간은 9시부터 6시까지지만 빠른 승진을 위해 더 일찍 출근해 더 늦게 퇴근하고 주말까지 반납한다. 학교와 직장에서 만난 여자들과 틈틈이 연애를 하긴 했지만, 결혼을 하기 위해 철수는 결혼 정보 회사에 등록한다. 가장 빠르게 가장 완벽한 결혼 상대를 찾기 위해서다. 3년 동안 30번의 만남을 가진 철수는 그중 조건이 가장 잘 맞았던 여성과 결혼한다. 철수는 앞으로 태어날 제2의 철수와 퇴직 후의 자신을 위해 각종 보험이나 펀드 상품에 가입하고, 조금 이르긴 하지만 자신의 장례를 구상해 묘원에 자리를 예약해둔다.
배 속에서 무덤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인생 이야기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철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전에서 태어난 지연, 부산에서 태어난 현정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들은 모두 완벽주의자다.
 
완벽에 대한 폭로, 혹은 진실 
그러나 완벽주의자들이 평생에 걸쳐 추구하는 완벽은 정해진 끝이 없으므로 계속해서 출발만 있는 달리기경주와 같다. 학업, 일뿐만 아니라 음식, 건강, 취미, 휴가, 사생활까지 모든 분야에 이상형이 존재하게 된 까닭이다. 더 이상 완벽으로부터 자유로운 분야는 없다.
이렇게 완벽주의자들이 완벽을 향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이, 이들의 완벽주의를 이용해 이득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모든 분야에 이상형을 부여한 기업들이다. 인생을 다른 출발선에서 시작하고자 하는 욕망을 이용한 조기교육 기관, 공부를 더 잘하고자 하는 욕망을 이용한 사립학교와 값비싼 학원, 더 건강하고자 하는 욕망을 이용한 유기농 상점, 더 날씬하고자 하는 욕망을 이용한 피트니스센터, 완벽한 파트너를 찾고자 하는 욕망을 이용한 결혼 정보 센터 등등. 기업은 완벽을 향해가는 모든 길이 열려 있음을 강조하며 우리를 유혹한다. 이론적으로 가능해지면 욕망이 생겨난다. 가능성이 있으므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제자리걸음만 할지언정 완벽을 향한 노력을 포기할 수 없게 된다. 이제 기업은 완벽주의자들의 완벽주의를 이용해 돈을 버는 것에서 더 나아가서, 완벽주의자들의 노동력을 이용하기도 한다. DIY(Do it yourself)와 크라우드소싱(crowd+outsourcing)으로 인한 ‘일하는 고객working customer’의 탄생이 대표적인 예다.
 
완벽한 사람을 이기는 사람, ‘다른’ 사람 
사실 완벽주의자가 원하는 대로 완벽해진다면 기업이 취하는 이득쯤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완벽주의자가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평생 얻지 못한다는 데 있다. ‘남들과는 달리 완벽한’ 사람이 되고자 부단히 노력한 사람은 모두 ‘남들처럼 완벽한’ 사람이 되고 만다. 유기농 식품을 먹는 사람도, 중국어 학원에 다니는 사람도 비단 자신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단점이 없으나 장점도 없다. 누구라도, 언제라도, 어디서라도 대체할 수 있는 ‘보통 사람’이 되고 만다. 한 명만 의자 위에 올라서면 그 사람이 돋보이지만 모두가 의자 위에 올라서면 모두 평범해지는 것처럼, 누구나 다 똑같이 완벽해지면 이제 누구도 특별하지 않게 된다. 결국 수많은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아무도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클라우스 베를레는 『완벽주의의 함정』을 통해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지 마라’ 하며 방향을 제시해주지 않는다. 완벽주의 때문에 힘든 독자들을 위로하지도 않고, 조금 더 힘내라고 용기를 북돋워주지도 않는다. 이 책은 그저 그렇고 그런 조언서, 실용서, 자기 계발서가 아니다. 저자는 완벽에 대한 열망이 왜 새로운 사회적 신앙이 되었는지, 그것이 어떻게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관통하는 주제가 되었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누가 이득을 챙기는지, 완벽주의의 모순을 파헤치고 이에 대해 폭로할 따름이다. 진실을 깨닫고 완벽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일은 이제 완벽주의자들의 몫이다. 지금 우리가 노력하는 것들이 우리에게 정말로 가치가 있는 일인지, 그 일이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가져다주는지, 우리는 얻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고 있지는 않은지, 배우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잊고 있지는 않은지, 지금 당장 멈춰 우리 스스로 되돌아보아야 한다.
 
 
 
책 속으로 
오늘날 사람들이 전에 없이 완벽에 집착하는 이유는 다양한 요인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가장 먼저 인터넷을 꼽을 수 있다. 인터넷은 노동과 소비의 시간적‧지리적 한계를 없애 우리를 역사상 유례없는 정보의 세대로 만들었고, 그 결과 세계는 평준화되었다. 사회적 진보에 대한 기대와 극단적인 개별화도 이런 경향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요인으로 가치의 대전환을 꼽을 수 있다.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인생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스스로 떠맡고자 하며, 그들의 자아실현 욕구 또한 그만큼 커지고 있다.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최고를 지향하는 사회에서 이것은 단순히 미래에 대한 기대일 뿐만 아니라 의무이기도 하다. _pp.12~13
 
우리는 명문 대학에 들어가 공부하고 또 부지런히 스펙을 쌓아 직장 생활에서 남보다 앞서간다. 자녀를 낳으면 일찌감치 중국어를 가르치는 유치원에 보내고, 6살이 되도록 잘하는 게 없는 것 같으면 근심스러운 얼굴로 상담소를 찾아가 아이의 학업 부진에 대한 대책을 논의한다. 열심히 운동한 덕택에 우리는 더 오래 살게 되었지만, 유감스럽게도 노년의 삶을 즐기기에는 돈이 부족해졌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노후 대비를 위한 완벽한 주식 투자 비법을 검색한다. 그리고 죽을 때를 대비해 우주 장례식을 신청하거나 묘원에 자리를 예약해둔다. 완벽한 삶을 마감하는 자신의 죽음이 남들에 비해 너무 뒤처져서는 곤란하니까 말이다. _p.13
 
학교 친구, 실습 동기, 대학 동문, 직장 동료, 친구의 친구 등 우리는 삶의 유동성을 통해 많은 사람을 사귀게 된다. 이들 모두를 하나로 묶는 공통점은 특정한 시점에 우리가 그들과 인생의 같은 단계에 있었고 같은 운명과 같은 기회를 소유했었다는 사실이다. 같은 강의실이나 같은 실습 현장에서 배웠고, 또 같은 회사에서 신입 사원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뒤로 인생행로가 갈라져 누구는 더 빨리 위로 오르고 누구는 더디게 오른다. 씽 같은 네트워크 덕분에 우리는 언제나 최신 정보를 알 수 있으며, 삶은 이제 쉴 새 없이 남의 인생을 엿보며 자신의 처지를 불안해하는 고단한 것이 되었다. _pp.51~52
 
완벽에 대한 열망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관통한다. 여기에 예외란 없다. 성별, 계층, 나이를 불문하고 말 그대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노력은 계속된다. (중략) 이런 노력에 끝은 없다. 다음 단계를 위한 유리한 출발점이 있을 뿐이다. _p.71
 
경쟁의 우위란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혼자 갖고 있을 때 성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교육열과 조기교육 열풍은 완벽주의 노력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를 분명하게 드러내준다. 그 문제란 바로 최적화가 경쟁적 군비 확장과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이다. 끊임없이 계속 늘려나가지 않으면 확보해놓은 우위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걸스데이’ 행사에서 나디네는 이런 말을 했다. “모두가 의자 위에 올라가 있으면 제 자신이 의자 위에 있다는 사실이 더 이상 두드러지지 않아요.” 이런 식으로 인플레이션이 계속되다 보면 어느 순간 위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무가치해진다. 이것은 최적화의 노력이 지닌 근본적인 모순이다. _p.96
 
프랑스에서는 한 손만 없어도 낙태를 허용해야 하는지, 아니면 팔 하나가 완전히 없을 때 낙태를 허용해야 하는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진 적이 있고, 미국의 의학 저널 《랜싯》은 모든 여성에 대한 무료 양수 검사는 염색체가 손상된 아기의 출생으로 인한 비용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식의 계산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런데 장애를 가진 태아의 생명이 왜 중단되어야 하는가? 왜 ‘정상성’―이것을 어떻게 정의하든 간에―을 최적화시키지는 않는가? 소위 ‘디자인 베이비’에 대해 독일에서는 아직까지 반대의 목소리가 높지만 인공수정의 경우, 적어도 기술적 측면에서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 그래서 유전자 질병이 있는 배아를 분류하여 제거하고, 성별, 눈동자 색깔, 지능 등을 인위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아들을 두 명 둔 부모가 셋째로 딸을 원할 때 ‘가족 균형’이라는 미명하에 배아 단계에서 의도적으로 여자아이를 선택할 수 있다. 또 둘 다 청각 장애가 있는 레즈비언 커플이 그들의 자녀가 가정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면 똑같은 장애를 가져야 한다며 청각장애인의 정자를 제공받은 경우도 있다. _p.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