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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의 얼굴 | 인문학과 과학의 눈을 통해 보는 선과 악의 진실
글 : 스티븐 배철러 / 옮긴이 : 박용철
출판사명 : 소담
도서분류 : 소담출판사 > 인문/사회
발행일/ISBN/판형/분량: 2012-07-30 / 89-7381-276-9-03100 / 145*210 /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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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고통스러운가?
세상은 왜 수많은 갈등으로 가득 차 있는가?


맹목적인 신앙, 명상 수행에서 벗어나
인간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이해를 돕다

송광사 구산 스님의 제자로서 한국과 인연이 깊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불교학자이자 실천가인 스티븐 배철러는 『붓다는 없다』, 『연꽃 속의 보석이여』로 국내 독자를 만난 바 있다. 배철러는 불교 경전을 해석하고 연구하는 데 평생을 바친 불교도임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종교 단체나 학문에 얽매이지 않고 불교적 무신론자이자 명상 지도자로서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 그로써 다양한 종교와 사상을 분방하게 탐구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중도적 입장에서 파헤칠 수 있었다.『선과 악의 얼굴: 인문학과 과학의 눈을 통해 보는 선과 악의 진실』은 저자가 불교적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인간의 본성인 선과 악을 깊이 있게 탐구하여 인간의 고통을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해낸 책이다. 그는 인간의 두려움과 욕망, 세상의 혼돈과 갈등 등 모든 고통의 근원을 인간의 본성에 내재되어 있는 ‘악마’의 지배 때문이라고 보고, 그 악마를 받아들이고 이해함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맹목적인 신앙이나 명상 수행이 아닌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이해를 통해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 이 책은 고통과 근심으로 가득 찬 현대인이 새로운 깨달음에 눈을 뜨고 자신의 번뇌를 주체적으로 치유할 수 있도록 이끌어줄 것이다.

‘선과 악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 왜 이해해야 하는가?
선악에 대한 성찰을 통해 고통의 근원을 탐구하다

우리는 왜 고통스러운가? 세상은 왜 수많은 갈등으로 가득 차 있을까? 스티븐 배철러는 이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 ‘세상의 고통은 악마의 지배 때문’이라고 답한다. 인간의 본질 속에 ‘악’이 내재되어 있어 인간은 ‘악마’와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숙명이며, 따라서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의 ‘악’은 ‘선’의 반대 개념이 아니다. 그렇다면 선과 악이란 무엇일까? 이 화두는 오랜 세월 동안 회자된 인간 본질에 대한 주제 중 하나일 것이다. 저자는 오랜 세월 동안 선과 악이 이분법적으로 구분되어왔음을 지적하며, 불교에서의 ‘악마’, 즉 ‘마라’란 ‘선’과 동일한 존재에서 나타나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양극단임을 설파한다. 즉 ‘악’ 없이는 ‘선’이 없으며, 이를 알지 못하면 진정한 깨달음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배철러는 마라와의 투쟁을 겪는 붓다의 인간적 갈등을 통해 이 선과 악의 개념을 증명해 보인다. 뿐만 아니라 유명 종교론자들과 철학자, 문학가 등이 선과 악을 어떻게 바라봤으며 그 속에서 ‘악’이 야기하는 고통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이렇게 인간의 삶을 지배해온 악마와의 동거가 숙명적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배철러는 악마의 유혹을 극복하고 사랑과 자비의 길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악마를 이해하고 받아들임으로써 평화롭게 공존하는 새로운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한계적 상황과 처지를 공감하고, 이해하고, 연민하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호소한다.

붓다와 예수에서 파스칼, 보들레르, 롤랑 바르트에 이르기까지
인문학과 과학으로 보는 ‘선과 악’의 패러다임

배철러는 이 책에서 불교뿐 아니라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조로아스터교에 이르는 거의 모든 종교와 신화, 보들레르, 카프카, 막스 베버 등의 문학, 사회, 철학, 심지어 진화 생물학 등을 종횡무진하며 ‘선과 악’의 패러다임이 인간 사회를 어떻게 지배해왔는지 펼쳐 보여주고 있다. 해박한 지식과 깊은 성찰로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인문학적 여정을 따라가는 것은 이 책을 읽는 큰 즐거움 중 하나다. 매우 다른 문화적 전통과 시대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종교와 신화, 문학작품, 사상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마라에 대한 붓다의 투쟁과 사탄을 물리치는 예수의 투쟁을 통해 저자는 인간이 마성의 힘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라는 점을 발견하고,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과 티베트 불교 역사서에 전해오는 신화 속 악마와 존 밀턴의 서사시 「실낙원」에 등장하는 사탄의 모습을 비교하고 공통점을 찾는다. “나를 따르는 자는 그 누구든 아픈 사람을 보면 반드시 보살펴주어야 한다”라며 타인의 고통 속에 깨달음의 씨앗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붓다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라고 설교하는 예수의 가르침은 매우 닮아 있다. 더불어 독자는 이 책에 등장하는 보들레르의 시, 프로이트의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갈등, 카프카의 소설을 통해 선과 악의 본질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추천평

배철러는 이 책에서 문학, 종교, 역사 등 다양하고 풍부한 소재를 총망라하면서 삶의 고통이 찰나에 불과한 우리의 삶을 그 오랜 세월 동안 어떻게 장악해왔는가를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_〈퍼블리셔스 위클리〉

불교적 관점에서 본 악의 문제를 매우 적절하고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연구 결과. 배철러는 존재에 관한 불교의 전통적인 통찰을 심오한 경지로 묘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붓다의 일생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통해 선과 악을 이분법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우리들의 인식 자체가 문제라는 점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아울러 우리가 일체의 폭력과 그에 따른 이중성을 배격하고 진정한 깨달음을 얻어 자유로워질 것을 제안한다. _〈라이브러리 저널〉

배철러는 고통과 쾌락이 주는 삶의 악마적 딜레마를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인식의 문을 활짝 열어준다. 그리고 너무도 빛나고 아름다운 시구를 통해 우리에게 망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보여준다. 이 책은 매우 혁명적인 텍스트이며, 고전에 비할 만큼 값지다. 한마디로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_조앤 할리팍스Joan Halifax, 『샤먼의 목소리』 저자

이 책은 우리에게 그동안 닫혀 있던 인식의 벽을 허물고 새로운 이해의 문을 활짝 열어준다. 그 새로운 이해를 통해 우리는 매우 품위 있고 정제된 방법으로 지금까지 모르고 살았던 삶의 본질을 명확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_조지프 골드스타인Josheph Goldstein, 『하나의 다르마, 서양 불교의 태동』 저자


책 속으로

거의 벗어날 가망이 없는 악마를 직면하게 되는 부조리한 상황을, 카프카와 베케트 같은 작가는 일종의 허무주의로 아주 정교하고 기이하게 표현하고 있다. 어떤 종교적 구원에 대한 희망에 의지하는 대신, 그들은 혁신적인 작품들 속에서 아주 찰나적인 순간이나마 세속적인 구원을 성취한다. 그들의 절망은 단순한 절망이 아니라 아름다운 절망으로 승화된다. 보들레르 역시 『악의 꽃』 서문에서 이렇게 자백하고 있다.
“악에서 아름다움을 추출하는 일은 힘들었지만 할 만했고, 편안한 즐거움이었다.” _p.68, 「권태와 폭력」 중

의식이라고 하는 것이 유동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불확정적으로 나타나는지 주의 깊게 관찰해보면, 누구나 ‘나’라고 하는 자아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한 걸음씩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보고 바로 알아차려 독립적이고 고립된 자아를 허물어버리면, 상호 교류의 끝없는 작용과 함께 창조하는 과정 속으로 다시 연결된다. 결국 붓다의 알아차림은 세상의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의식은 어둠 속의 반딧불이나 개울 위에 잠깐 일다 사라지는 물거품보다 더 안정적이지 못하고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_p.140, 「이 몸은 호흡이다」 중

기다림을 배운다는 것은 불확정적인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 열반의 편안함 속에 머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기다림은 ‘공’이 단순히 ‘아무것도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 것과 같이 소극적인 무대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혼돈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 깨어 있는 정적이며, 예측 불가능한 인생의 사건들과 타인과의 피할 수 없는 조우에 대처할 수 있는 훌륭한 힘이 되어준다. _p.157, 「기다림을 배우며」 중

“부처는 신분 없는 참사람, 마른 똥 막대기다!”
여기에서 의미하는 ‘신분 없는 참사람’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애매모호한 실체에 대한 정의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중국에서 통용되던 ‘참사람’은 깨달은 성자를 지칭하던 통상적인 말이었고 ‘신분 없는 사람’은 보잘것없이 하찮은 사람을 의미했다. 그렇게 보면 ‘신분 없는 참사람’은 참으로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순적인 말에는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우리는 흔히 사람의 외모를 보고 그 사람의 신분을 판단하고, 표정 등을 통해 그가 처한 상황을 짐작하지만 사람은 결코 겉만 보고 판단할 수 없는 법이다. 어쩌면 우리는 매일같이 ‘신분 없는 참사람’과 만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인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_p.168, 「보통 사람의 일생」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