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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택리지 | 서울은 어떻게 진화했는가-궤적을 찾아서
글 : 노주석
출판사명 : 소담
도서분류 : 소담출판사 > 인문/사회
발행일/ISBN/판형/분량: 2014-09-15 / 89-7381-218-9-03980 / 164*224 / 3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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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지구상에서 가장 다이나믹하게 변한 도시, 서울의 민낯을 만나다

“서울은 예수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던 기원전의 역사를 품은 고대 도시이고,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이 겨루던 곳이며, 고려 때 남경이었으며, 조선 500년 내내 유일무이한 대도시이자 국가 그 자체였던 곳입니다. 17세기 서울의 인구는 20만 명으로 프랑스 파리(10만 명)나 영국 런던(15만 명)을 능가했습니다. 지금도 서울에는 1,000만 명이 살고, 수도권 주민 1,400만 명이 오가며, 나머지 2,600만 명이 지향하는 동방의 메갈로폴리스입니다.” -본문 중에서

2013년 6월부터 12월까지 서울신문에 장기 연재한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 택리지’가 드디어 책으로 나왔다. 기존 칼럼에 외부 기고 등을 덧붙여 서울의 역사와 문화의 궤적을 더욱 풍성하게 엮어낸 역작이다. 
우리에게 ‘서울’이란 과연 무엇일까.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서울에서 살아가지만, 정작 서울의 역사와 문화, 지리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서울은 그저 복잡하고 바삐 돌아가는 대도시일 뿐, ‘추억’이나 ‘고향’, ‘역사’라는 말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소설가 김훈의 말처럼 서울은 ‘만인의 타향’일 뿐 내 고향은 아닌 그런 도시가 됐다.
그러나 서울은 상처가 많은 도시이다. 16세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많은 유적이 불타고 약탈당했으며, 근대 일제강점기엔 식민 도시로 강제 개조됐다. 일제가 민족의 정기를 끊어놓기 위해 자행한 악질적인 정책의 흔적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을 정도다.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성곽을 철거하고 전차 궤도를 놓으면서 역사가 살아 있는 구시가지가 파괴되었고, 이후 한국전쟁과 장기 개발 독재를 거치면서 서울은 역사 도시의 향기를 잃고 정체성이 왜곡됐다. 그러나 폐허에 가까웠던 서울이 ‘한강의 기적’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60년.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역동적이고 압축적인 성장과 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저자는 저널리스트의 시각과 감각으로 이러한 서울의 변화상과 진화 과정을 ‘장소 인문학’적 관점에서 그려내며, 서울의 옛 모습과 현재를 비교, 분석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서울’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물론, 개발 연대의 기록 등 서울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겪은 궤적을 집요하게 쫓으며 숨 가쁘게 달려온 서울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준다.


도시의 생성과 소멸, 그리고 재생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서울이 600년 역사를 지닌 도시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최근 서울의 기원과 역사에 관한 정설이 재정립되고 있다. 《삼국사기》의 백제 건국설화에 따라 서울의 기원을 기원전(BC) 18년으로 보고, 한성백제 493년에,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가 서울을 남경(南京)으로 삼은 기간을 더하면 수도 서울의 역사는 무려 2000년에 이른다.
그러나 서울의 연식은 2000년을 넘겼지만, 마일리지는 환갑에 불과하다. 사실상 거의 신흥 도시나 다름이 없다. 서울은 짧은 시간에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급격한 변화와 개발 논리 속에 민족의 역사와 애환이 서린 곳들은 대부분 파괴되고 말았다. 《서울 택리지》는 이러한 안타까운 역사를 되짚어 지금 우리 옆에 남아 있는 건물, 도로, 장소, 풍광의 생성과 소멸 그리고 재생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기억하고 남겨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많은 전쟁에 유린당하고, 밀어붙이기식 개발 정책에 의해 서울은 혹독한 고통을 겪었지만, 끝내 모든 것을 견뎌내고 새롭게 진화했다. 저자가 풀어내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복잡한 빌딩 숲에 가려진 서울의 숨겨진 내력과 모든 풍파를 이겨내고 다시 태어난 역사적 유물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서울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전혀 새로운 서울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다. 서울은 아직도 진화 중이다.

▮ 추천사

우리는 서울에 터를 잡고 자식을 키우고 살지만 서울에 대해 문외한인 경우가 많다. 서울은 나만의 고향이 아니라 만인의 고향 같은 느낌 때문에 애정이 덜 가는 탓이 아닌가 한다. 그런 맥락에서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 택리지》는 갈증을 풀어준다. 특히 ‘강북=조선 한양, 강남=대한민국 서울’이라는 해석은 역사학자 입장에서 볼 때 통찰적이다.
신형식(전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장, 이화여대 명예교수)

서울신문에 연재되던 <서울 택리지>가 책으로 나온다. 저자가 풀어내는 서울 도시사의 굴곡진 이야기가 구성지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애정도 자라는 법이다. 애정이 있는 사람들이 좋은 도시를 만든다. 오늘의 서울을 만들어낸 저간의 내력에 관심을 가진 분들에게 좋은 입문서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강홍빈(서울역사박물관장)

《서울 택리지》는 동아시아의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에서 이천 년 역사 도시를 향해 걸으면서, 노주석 기자가 기록을 찾고 회상하고 비판하고 구축한 기억이다. 여러 형상과 층위의 도시 장면들이 겹쳐지고 연결되면서, 서울 지도 위에 새롭게 역사 산책로가 그려졌다. 서울의 장소와 역사와 문화를 두텁게 묘사한 역작이다.
송인호(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장)

▮ 책 속으로

서울은 수도권 주민을 포함해 2,400여 만 명이 드나들고 대한민국 5,000만 국민이 지향하며, 외국인 관광객 1,000만 명이 찾는 ‘동방의 메갈로폴리스’가 됐다. 불과 반세기 만에 일어난 경천동지할 변화다. 이중환이 현대 서울을 보았다면 아마도 《택리지》의 후편으로 ‘서울 택리지’를 집필했을 것이다. 그는 뭐라고 쓸까. _「이중환은 ‘서울 택리지’를 어떻게 쓸까」, p.20

조선 시대는 한양이 곧 나라였다. 지독한 도성 중심주의가 판쳤다. 지방에서 서울로 가는 것을 ‘상경(上京)’이라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낙향(落鄕)’이라고 할 정도였다. 또한 ‘문외송출(門外送出)’이라고 해서 죄를 지으면 성문 밖으로 내쳤다. 당시 사대부가 서울 밖에 사는 것은 일종의 형벌이었다. 유배를 살던 정약용이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너는 사정이 어지간만 하면 한양 사대문 밖에 살지 말고 어떻게 해서든 사대문 안에서 살도록 해라……. 그것도 힘들거든 사대문 가까운 곳에 살아야 한다. 그래야 여러 가지 보고 듣는 게 많고 기회들이 많다”라고 쓸 정도였다. 광복과 한국전쟁 이후 서울로의 광적인 인구 집중은 ‘예고된 참사’였다. _「모든 길은 한양으로, 지독한 서울 중심주의」, p.49

한강은 대한민국과 서울을 대표하는 이미지다. 미국의 도시설계가 케빈 린치(Kevin Lynch)는 “도시는 랜드마크(landmark)와 구역(district), 통로(path), 접점(node), 경계(edge)로 인지된다”라고 ‘도시의 이미지’를 정의했다. 이 다섯 가지 키워드는 여전히 유효하다. 지난 2002년 서울 시민 1,000명에게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니 37퍼센트가 한강을 꼽았다고 한다. 남산타워(35퍼센트)와 경복궁(25퍼센트)이 뒤를 이었다. 외국인에게도 ‘한강의 기적’은 한국과 한국의 경제성장을 대표한다. _「한강 개발의 뒤안」, p.63

지명이란 자연과 지리, 풍속, 제도의 산물이다. 그러나 식민 통치를 갓 벗어난 신생 대한민국은 숙고 없이 즉흥적으로 지명을 바꾸는 데 열중했다. 오늘날 사대문 안을 오가는 숱한 청소년들이 육조거리와 황토현, 운종가 같은 우리 옛 지명을 알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좋은 역사나 전통이라도 계승하지 않으면 잊히기 마련이다. _「즉흥적으로 지명을 바꾸다」, p.84

서울광장은 대한민국의 대표 광장이다. 역사성과 상징성을 품은 공간이다. 도시의 광장은 마치 도시의 가슴과 같다. ‘시청 앞’이라는 한마디에 백 가지 의미가 함축돼 있다. 3·1운동, 4·19혁명, 6월 민주화 항쟁, 월드컵 거리 응원 등 숱한 근현대사의 무대이자 현장이었다. 특히 중장년층에게 서울광장은 울분의 공간이었다. 시위대와 최루탄이 부딪치고, 구호와 경찰의 저지선이 맞선 탄식의 시간이 그곳에 있었다. 자동차를 몰고 시청 앞 광장을 통과해 목적지까지 갈 수 있으면 비로소 서울 시내에서 운전할 자격이 있다고 여겨진 때도 있었다. 여덟 가닥의 진입로와 여덟 가닥의 퇴출로가 뒤엉키던 교통광장이었다.
2004년 메마른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자유로운 보행 공간 ‘서울광장’으로 부활했다. 또한 울분과 탄식이 작열하는 분노의 광장에서 여유와 즐김이 있는 문화의 광장, 젊음의 광장으로 진화했다. _「도시의 심장이 된 서울광장」, p.93

“도시는 기억으로 살아간다(The city lives by remembering)”라고 미국의 시인 랠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읊었지만, 서울은 600년 고도(古都)의 기억이 별로 없다. 마치 신흥도시 같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통에 불타고 약탈당했으며, 일제강점기에 도읍의 자취는 강제적으로 지워졌다. 조선총독부~경성시청~남산 조선신궁을 상징 축선으로 하는 식민 도시로 개조됐다. 게다가 한국전쟁 통에 그나마 남은 것 대부분이 파괴됐다. 1960년대 이후에는 개발독재 시대의 무지막지한 개발 광풍을 타고 또 한 번 뭉개졌다. 역사의 향기는 흩어졌다. 한강 이남으로 영역을 확대한 서울은 사실상 한국전쟁 이후 새로 건설된 신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대문 안에는 표석(標石)만 어지럽게 남았을 뿐이다. _「서울의 재건」, p.107

서울은 풍수에 의해 선택됐고, 풍수에 의해 조성됐으며, 풍수에 의해 유지, 관리된 도시다. 심하게 얘기하면 풍수의, 풍수에 의한, 풍수를 위한 도시였다. 불교를 버리고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유교의 나라’ 조선의 풍수 의존도가 이다지도 높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은 유교를 국교로 정했지만 겉과 속이 달랐다. 왕에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생활양식은 유교를 따랐지만 생각은 불교식으로 했다. 급한 일이 생기면 풍수나 굿 같은 무속신앙을 찾았으며, 살아서 집터를 구하고 죽어서 묏자리를 정하는 일은 철저하게 풍수에 따랐다. _「서울은 천하 명당이 아니었다」, p.235

우리에게 강남이란 무엇일까. 새 서울도, 제2 서울도, 남서울도, 영동도 아니다. 바로 서울이다. 강북이 조선 왕조의 도읍 한양이라면 강남은 우리 손으로 건설한 ‘진짜 서울’일지도 모른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은 강북에서 조선을 느끼고, 강남에서 현대 한국의 이미지를 떠올린다고 하지 않는가. 불과 50년 전에 시작된 한강의 기적은 곧 강남 신화이며 코리안 드림이었다. 18세기를 살았던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이 21세기 강남의 낮과 밤을 필설로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왕국이나 식민지, 독재국가도 아닌 대한민국의 진정한 서울은 바로 강남이 아닐까. _「강남은 냄비 근성과 ‘빨리빨리’ 문화의 합작품」,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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